세상을 바꿀 수 있었던 발명품도 알려지지 않으면 소용없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올랐지만 공유되지 않았다면 무의미하다. 아무리 좋은 제품과 Solution, 서비스를 보유하고 뛰어난 영업조직이 있더라도 고객에게 전달되지 않고 고객과의 접점을 형성하지 못하면 무의미하다. 이것이 이번 장에서 다룰 시장접근 경로이다.
육의전 대행수는 제품이 아니라 시장으로 향하는 길목인 풍등령을 가로막은 덕분에 상권을 독점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미시령 터널의 개통과 함께 형성될 새 교통 요지에 내일을 생각하고 터를 살 때, 다른 누군가는 아무것도 모른 채 미시령 옛길에서 장사하다가 망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고 상권이 형성되고 나서야 상점을 구하는 사람도 있다. 시장 접근 경로가 성패와 흥망을 가르는 핵심임을 보여준다.
시장 접근 전략을 포괄적으로 정의하면 시장과 고객의 기회에 맞게 조직과 자원을 배치하고 시장까지의 판매 경로를 세분화해 설계하는 것이다. 영업의 시작은 시장과 고객이라고 누누이 강조했고 아무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B2B 영업에서 시장과 고객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방법과 경로를 고민하지 않는 영업사원은 없지만, 현장에서의 실행은 전략적 분석과 계획이 아니라 영업 기회를 중심으로 지금까지의 관행에 따라 움직인다. 공을 쫓아 뛰어다니는 동네 축구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당하겠다. 공이 패스될 곳에 미리 가 있을 줄 모른다. 눈앞의 영업 기회를 위해 영향력자도 만나고 필요한 제품을 보유한 회사도 만나지만 체계적 시장접근 전략은 없다.
시장 기회에 맞춘 조직과 자원의 배분 및 배치를 GtM(Go to Market), 시장까지의 판매 경로 설계를 RtM(Route to Market)이라고 분리해 정의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따로 논할 사안이 아니다. 시장과 고객 기회를 정확히 분석하고 그것에 맞게 조직과 인력을 조정하고 고객과 영업 제품, 서비스를 최대한 세분화해 경로를 설계하는 과정은 하나의 프로세스로 관리되어야 한다.
GtM, RtM, 유통 전략, 채널 전략, 채널 배분 등 다양한 용어로 쓰이지만 핵심은 같다. 어떤 용어를 사용해도 되지만 핵심 개념은 다르지 않다. 구체적 실행을 논하기 전에 시장접근 전략 수립에서 잊으면 안 되는 3가지를 정리한다.
1. 길에 의해 바뀌는 게임
콘텐츠도 없는 기업이 전통적 언론매체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도 기술과 고객 접근 경로의 차별화 때문이었고 인터넷 은행이 기존 은행을 뒤흔드는 것도 고객 접근 경로의 차별화 덕분이다. 미약한 보부상의 객주가 육의전 수장을 쓰러뜨린 것도 북간대로 확보 덕분이었고 모든 전쟁의 시작과 끝은 보급로, 이동로, 공격로 등 길에서 비롯되었다. 적의 길을 막으면 이기고 나의 길이 막히면 전멸당한다.
걸어 다닐 때는 기차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고 기차를 이용하면서 고속도로는 생소한 단어였다. 그래도 보이는 길의 변화는 보고 알 수 있다. 고속철도가 이렇게 빨리 확산될 줄 몰랐고 그것은 모든 비즈니스 질서를 바꾸었다.
하지만 고객까지 이르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고속도로나 고속철도는 공사 계획도 공고되고 공사 기간도 걸리고 안정화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고객까지 이르는 길의 변화는 계획 공고도 없고 변화 자체도 안 보인다. 고객과 연결되는 길은 물리적 길이 아닌 소통의 길이다. 그래서 한계가 없고 변화에 이르는 시간도 길지 않다. 말하고 듣고 느끼고 배울 수 있다면 어떤 형태나 방법으로든 가능한 것이 고객 접근 경로다.
고객 접근 경로는 모든 기업, 영업조직의 생명줄이다. 고객을 알고 만나는 길, 고객 중심으로 가는 길이 매출로, 이자 수익로이며 게임을 바꾸는 길이다.
2. 제품마다 다른 시장접근 모델
TV와 냉장고를 영업하던 시절의 판매 유통 채널을 스마트폰 비즈니스에 그대로 쓰겠다는 어리석은 회사는 없다. 같은 전자업체에서 생산, 판매되는 제품이라고 같은 경로로 판매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냉장고와 스마트폰의 판매 유통 채널이 다르고 같은 화장품 회사가 판매하는 제품도 특성에 따라 판매 경로를 다르게 정한다.
B2C 비즈니스에서는 모든 전략의 한 축이 시장접근 경로의 설계다. 도요타 성공의 한 축인 렉서스는 기존 도요타의 4P 전략을 모두 바꾸었고 브랜드에서 회사명도 지웠다. 이른바 플레이스(Place) 전략이다. 한 사업 부문의 주력제품에서 성공한 영업 모델을 다른 사업 부문의 새 제품에서도 똑같이 실행하고, 제품이 다양해지고 범위가 넓어졌지만 같은 시장접근 경로에만 의존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TV 유통전략을 스마트폰에서 그대로 쓰고 렉서스를 만들어 도요타 캠리 채널을 이용하려고 하면 곤란하다. 프리미엄 화장품을 발표하고 저가 화장품 채널인 대형마트에 진열하겠다는 B2C 비즈니스 리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B2B에서는 이런 유형의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또한 B2B 비즈니스를 이끄는 영업 현장에는 시장접근 전략을 제대로 이해하고 준비하는 리더들이 많지 않다. GtM, RtM이라는 용어는 쓰지만 채널 관리, 파트너와 협력 업체를 관리하는 업무를 전부라고 생각한다. 시장접근 경로는 제품마다 다르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3. 계속해서 바뀌는 시장 접근 경로
비즈니스 총량은 변화가 없는데 다른 길이 생기면 기존 길의 유통물량과 관련 비즈니스는 줄어들거나 심지어 사라질 수도 있다. 비즈니스는 길을 따라 형성되고 새로운 길은 계속 생기고 있다. 그래서 고객 접근 경로 계획과 점검은 주기적으로 면밀히 점검되어 상황에 맞게 조정돼야 한다. 이미 변화가 일어나고 직접 영향을 받을 때까지 모르고 있다가 움직이면 이미 늦었다. 새로운 도로가 만들어지고 상권이 형성된 후에야 상점을 구하러 다니는 것과 같다.
걸어서 이동하는 시대에서 보통, 우등, 특급 열차를 선택하는 시대로 바뀌었고 다시 차를 몰고 갈지, KTX를 탈지, 항공기를 이용할지 결정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이처럼 보이는 경로의 변화뿐만 아니라 기술과 환경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경로의 출현은 게임을 바꾼다. 현금 입출금기가 은행 창구 업무를 대신하더니 인터넷 모바일 뱅킹은 은행 지점들을 없애고 현금 입출금기도 밀어내고 있다. 종이신문을 통해 뉴스를 접하던 소비자가 온라인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뉴스를 선택해서 보고 있다.
과거의 길은 만들어진 대로 갈 뿐이었지만, 비즈니스의 길은 누구나 만들 수 있기에 그로부터 모든 것이 바뀐다. 길이 바뀌면 고객과의 접점이 바뀌고 시장접근 경로상 협력 업체, 영향력자, 판매회사가 달라지기도 하고 고객 접근 경로상의 협력 업체를 비롯한 제삼자에 의해 새로운 길이 열리기도 한다. 과거의 기술 혁신은 제품에서 시작되어 제품으로 끝났다면 21세기 비즈니스 혁신의 키워드는 고객 접근 경로이다. 고객까지의 길이 바뀌고 패러다임이 바뀌고 길을 장악한 협력 업체와 판매 채널, 영향력자는 항상 바뀌어 왔고 또 바뀌어 갈 것이다. 이것은 영원한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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